11.13. 내면의식을 추구한 시
11.13.1. 시문학파가 개척한 길
‘시문학파’가 형성된 193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에서 군국주의적 무단통치로 강화되기 시작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국내에서는 문화운동만이 가능했는데 1930년을 전후하여 전개된 순수문학운동도 이
논의에 앞서 - 본고의 방향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이 친일문학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트린 이후 진행되어온 친일문학 담론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해방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친일담론이 문제적이었던 것은 친일담론을 둘러싼 한국의 현실 상황이 매우 복잡다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
3) 시대적 배경
라이프찌히 근교에서의 제민족들의 전투 (1813.Völkerschlacht von Leipzig)로 나폴레옹 (Napolen)은 1815년 유럽에서 완전히 실권하고 독일은 프랑스의 이민족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방전쟁 1813-1815). 유럽의 200여 제후국들의 1815년 비인회의 (Wiener Kongreß)를 통해 ‘독일연방’ (Der Deutsche Bu
문학의 발표매체인 한글판 신문, 잡지류를 대부분 폐간시킴으로써 민족문학의 맥을 단절시키고자 하였다. 마침내 국내 3대 신문을 폐간시키고 ― 조선중앙일보를 1937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1940년 8월에 폐간 ― 일제의 어용 기관지인 ‘매일신보’만을 남겨 놓았다. 한편 잡지의 경우 당시의 대
문학건설본부」와 함께 「朝鮮音樂建設本部」․「朝鮮美術建設本部」․「朝鮮映畵建設本部」등의 看板이 나란히 걸리게 되면서 이들이 연합하여 「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를 發足한 것은 이틀 후인 1945년 8월 18일이었다. 모든 조직의 지휘는 임화에 의해 이루어졌다. 임화는 「조선문화건
문화 전반에 걸친 당면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일제 잔재의 청산, 민족정기의 수립,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과 이를 토대로 한 자주적 민족국가건설은 필수적인 과제였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한반도 정세에 미국과 소련이 개입하였고, 김구, 김규식의 남북협상이 불발되면서 한반도에
문화의 이해> 학문사, 변성규 편저. 2003.
양자강 상류에 위치한 사천은 사방이 고원이나 산맥으로 둘러싸여 지리적으로 고립된 거대한 분지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예로, 중국의 위대한 문장가 이백은 ‘蜀道之難, 難於上靑天 (촉으로 가는 길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힘들다)’ 라고 했다. 또
낭만주의가 계몽주의, 고전주의의 세계관 문학관에 대립하여 독자적 문예사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철학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철학, 셸링의 자연철학, 슐라이어마하의 낭만적 종교철학이다.
① 요한 고트립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주관적 관념 철학자 피히
Ⅰ. 들어가기
1. 1930~40년대 그리고 여성
1930년대에는 신여성이라는 말보다 ‘모던걸’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 말은 신교육을 받은 여성이라기보다는 다방, 영화, 레코드 등 서구적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계층이라는 의미가 더욱 많이 내포되어 있었다. 모던 걸은 당시 양장을 하고 거
문화 이 전에 있었던 본원적인 인간의 자유를 회복하고자 하는 동경이 바탕에 깔려있는 흐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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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건축가의 흐름
1. 고대 건축가
건축사에 나타나는 세계 최초의 건축가는 고대이집트 제 3 왕조인 제세르왕의 재상 임호테프이다. 그는 B.C 2600년 무렵 왕을 위해